[이슈와 테마] 기업들이 선택한 ‘조용한 구조조정’의 실체

“임직원 수는 줄고 조직은 얇아지고 남은 직원들의 업무는 늘고 있다”

[팩트UP=이세라 기자] 최근 주요 기업들은 실적 부진이나 경영 환경 악화를 언급하면서도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선을 긋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표면적으로 과거처럼 공개적인 해고나 대규모 인력 감축 발표는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임직원 수는 줄고 조직은 얇아지고 남은 직원들의 업무는 늘고 있다.
 

 

기업들은 이것을 구조조정이 아닌 희망퇴직, 전환배치, 자회사 이동, 외주화, 신규 채용 중단이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해고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고 할 수 있다.

 

◆ “해고는 없지만 사람은 사라진다”

 

현재 조용한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선택지를 가장한 압박, 내부 이동이라는 이름의 축출,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식, 외주와 자동화 등이 꼽힌다.


선택지를 가장한 압박의 경우 ‘희망자에 한해서’라는 전제를 달지만 대상은 특정 직무·연차·부서로 사실상 정해져 있다. 남을 경우의 보직 변경, 평가 하락 등 불이익은 말하지 않아도 공유된다.


내부 이동이라는 이름의 축출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본사 인력을 자회사나 계열사로 전환 배치하는 방식인데 급여·복지·업무 안정성은 달라지지만 고용 유지라는 형식은 유지된다.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식도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퇴직자가 나와도 신규 채용은 없고 남은 인원이 업무를 나눠 가진다. 기업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조직 규모를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만드는 효과를 얻는다.


사람이 하던 일을 외주나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외주와 자동화도 단골이다. 비용은 줄지만 관리 책임은 내부 직원에게 남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리스크 없이 이미지 훼손 없이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이다.


기업의 한 관계자는 “노동시장 경직성, 여론 부담, 노조 반발로 과거식 구조조정은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기업들ㅇ이 조용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며 “공개 해고의 시대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이어 “대규모 구조조정은 기업 이미지와 ESG 평가, 투자자 신뢰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면서 “AI·자동화는 효율 개선이라는 명분 아래 인력 감축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됐다”고 부연했다.

 

◆ “가장 큰 변화는 남은 사람들”

 

조용한 구조조정의 핵심은 나간 사람보다 남은 사람에게 있다. 업무 범위는 넓어지고 책임은 늘어나며 실패의 부담은 개인이 떠안기 일쑤다. 하지만 보상은 그대로다. 조직은 슬림해졌지만, 개인의 체감 노동 강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한 대기업 직원은 “기업들은 ‘우리는 해고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해고는 없는데 매년 사람이 줄어들고 있고 구조조정이 아닌 게 아니라 구조조정을 그렇게 부르지 않을 뿐”이라고 귀띔했다.


한 노무 전문가는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고용의 질과 안정성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며 “조용한 구조조정은 숫자에 잘 드러나지 않고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으며 문제 제기하기도 어려워 더 널리 퍼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의 이 같은 행태가 계속된다면 기업의 효율은 높아질 수 있으나 조직의 지속 가능성은 약해질 수 있고 결국 묻게 된다”면서 “사람을 줄이지 않고 사람을 버티게 하는 방식이 진정한 구조조정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