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UP=정도현 기자] 카세트테이프, 폴더폰, 옛날 과자 패키지, 1990년대 로고. 최근 소비 시장에서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이 더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복고(레트로) 트렌드다. 단순한 유행처럼 보이지만 복고는 브랜드 전략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왜 다시 과거를 불러오고 있을까.
◆ “복고는 안정감의 상징”
복고 트렌드는 패션이나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식품, 전자기기, 자동차, 콘텐츠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현상의 핵심은 옛것이 좋아서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지금 ‘너무 빠른 변화가 불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검증된 것, 실패하지 않을 선택, 감정적으로 편안한 경험 등을 선호한다. 복고는 안정감의 상징이다.
복고가 작동하는 심리는 기억의 재활용이다. 과거의 브랜드와 디자인은 이미 한 번 신뢰를 얻은 경험인 동시에 소비자는 선택에 드는 심리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감정적 연결 또한 복고가 작동하는 심리라고 볼 수 있다. 복고 상품은 기능보다 감정을 먼저 자극한다. 어릴 때 먹던 맛이나 처음 쓰던 물건 같은 기억은 구매 이유를 빠르게 만든다.
복고가 작동하는 또 다른 심리로는 실패 회피가 있다. 새로운 브랜드는 실패할 수 있지만 익숙한 브랜드는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 점에서 복고는 보수적 소비가 아니라 합리적 선택에 가깝다.
복고 전략의 강점은 분명하다. 새 브랜드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이미 알려진 스토리를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마케팅 설명이 짧아진다. 복고는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전략인 셈이다. 그래서 최근 기업들은 과거 로고 복원이나 단종 제품 재출시, 옛 광고 콘셉트 재해석 등과 같은 방식으로 브랜드 자산을 다시 꺼내고 있다.
◆ “복고의 핵심은 추억 아니라 재해석”
하지만 모든 복고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는 복고 전략에는 공통점이 있다. 단순한 복제나 현재 소비자 맥락을 무시한 디자인만 과거, 경험은 현재와 불일치 등 소비자는 과거를 그대로 원하지 않는다. 과거를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한 것을 원한다. 복고의 핵심은 ‘추억’이 아니라 재해석이다.
흥미로운 점은 복고가 세대별로 다르게 소비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장년층의 경우 실제 경험의 재현이라면 MZ세대의 경우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의 새로움이다. 젊은 세대에게 복고는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콘셉트다. 그래서 복고는 특정 세대에만 국한된 전략이 아니라 세대를 연결하는 브리지 역할을 한다.
유통 전문가들은 기업이 얻을 수 있는 핵심 시사점으로 ▲브랜드는 기억 자산을 관리해야 한다 ▲속도 경쟁보다 신뢰 경쟁이 중요해진다 ▲새로움은 반드시 완전히 새로울 필요는 없다 등 세 가지를 꼽는다.
브랜드의 과거는 그냥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빠르게 바꾸는 브랜드보다 일관성을 가진 브랜드가 선택받는 환경이다. 소비자는 익숙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는 데서 만족을 느낀다.
한 유통 전문가는 “복고 트렌드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면서 “불안한 시대에 소비자들이 찾는 것은 빠른 혁신보다 믿을 수 있는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의 브랜드 경쟁은 누가 더 새롭냐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를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며 “복고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